1. 벚꽃철
벚꽃철이면 십리벚꽃길이 붐빈다.
5-6년 전에 5km의 그 길을 처음 걸어본 뒤로 이번에 다시 찾았다. 먼 길 시외버스를 타고 화개까지 가서 곧바로 십리벚꽃길을 걸을 예정이므로 체력적인 한계로 하룻밤 묵고 와야 했고, 길 끝에 있는 쌍계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기로 했다.
2. 템플스테이 경험
템플스테이는 3번째 참가이다. 7년쯤 전에 범어사에서, 또 2년쯤 전에 선운사에서였다. 범어사 때는 하필 부처님오신날이 낀 2박3일 프로그램이어서 외국인 포함한 남녀 50여 명 참가자에다가 행사를 맞아 절을 찾은 일반불자들로 경내가 무지 붐볐고, 프로그램 참가자들 중에 좋은 사람들도 만났다.
2번째 선운사에서는 봄꽃이 막 몽우리를 틔우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철이 아니었고, 또 평일 프로그램이라서 참가자가 적어 독방을 썼다. 사찰은 아담하고 아름다웠고, 경내에 한 전각에는 절을 찾은 불자들이 자유로이 들어와 마실 수 있도록 나무로 된 탁자마다 찻잔세트가 놓였고, 한쪽에는 차가 담긴 큰 용기와 찻잔 씻을 물을 같이 놓아두어서, 거기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앞으로는 대웅전을, 뒤에 난 유리 없는 창으로는 드리워진 꽃나무 가지를 보노라면 정말 신선이 따로 없었던 기억이 있다. 경내 산책이나 뒷산(이름 까먹;;) 등반로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도솔암에 들른 코스도 좋았고.
(선운사도 좋지만 도솔암에 머물며 며칠 지내는 것도 좋다고 선운사 입구에서 복분자 팔던 상인이 알려주었다.)
(선운사 전각에서 차 마시며-전각명은 까먹)
이번에 갈 쌍계사는 오래 전 꿈에 나온 뒤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사찰이니 벚꽃길 걷기와 더불어서 겸사겸사 잘된 셈.
3. 길을 걷기
나무가 예뻐서 찍어봤는데, 내 사진솜씨가 별로라서 이쁨이 사진에 묻어나지 못했다. 나무야, 미앙 ㅡ.ㅡ;;
4. 물에 대한 단상
십리벚꽃길 옆에 나란히 흐르던 개천은 길 끝에 도착해서 쌍계사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서 이름을 알게 되었다. '화개천'.
화개천의 물이 흐르다가 바위를 만나니 멈춰서서 길을 비키라고 바위와 다투지 않고 슬쩍 돌아서 가던 길을 간다.
다투지 않음보다 간단히 방법을 찾아내는 융통성을 배운다. 현대사회에서 다투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은 현대인의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내게도 두 번의 경험이 있다. 타인과 협업을 하면서 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었고, 그런 만큼 상대의 입장과 의도를 최대한 살려주려고 프로정신을 믿고 한발 물러나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나를 만만히 보고 뒤통수 치려 하는 것이 아닌가. 칼자루를 쥐었음에도.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사람들 마음이 생각보다 선할 때도 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겪게 된다는 것이. 착한사람 컴플렉스에 걸린 것처럼 사람에 대한 믿음을 맹신해선 현대를 살아내기 곤란하다.
다행히 그때마다 그 사악한 속셈은 내게 들켰고(그런 속셈들은 대개 들킨다는 진리에 감사한다), 그럴 때면 나도 그전까지와는 달리 그들을 대한다. 받은 만큼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 내 뒤통수를 치거나 과하게 날 힘들게 해서 상대가 원하는 걸 얻는 꼴을 두고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둘 다 일에서 떨려났고, 주위의 동종전문가들 사이에서의 평판에 큰 흠이 났다.
그것은 내가 그들과 의지로든, 입장으로든, 감정으로든 다투었기에 막은 성과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다투지 않는 대신에 이용당하는 것이 진리나 가르침이 될 수는 없다. 때문에 나는 다투지 않는다는 물의 미덕보다는 길을 잘 찾는 미덕에 더 감탄하는 편이다. 사악한 상대를 만났을 때 일을 진행하는 방법, 그 사악한 상대를 제대로 엿먹이는 방법. 도덕경에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그건 물론 '다투지 않음'의 미덕을 칭송한 것이고, 방금 내 의견은 상선약수의 현대적 해석이라고나 할까?ㅋㅋ
5. 다시 길에서
하동은 차로 유명하다. 차밭이 군데군데 있다.
6. 쌍계사
글 밑에 사진은 대웅전 앞에 좌우에 있는 '당간지주' 중의 하나이다. 저 두 돌 사이에 '당간'이라는 긴 철구조물이 세워지면 당간지주가 당간을 지탱해준다. 오래 전에 배운 거라 기억이 가물하긴 한데, 삼국시대부터 사찰을 지으면 당간을 세워서 법회 때마다 절을 상징하는 깃발이었나? 뭐였나? 아무튼 상징물을 양쪽 당간에 건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찰과 당간조차 사라져도 돌로 견고히 만들어진 당간지주는 남아 있는 곳이 많다. 해서 삼국시대 사찰지를 답사가면 빈 터에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남은 곳이 있는데, 예전에 사찰터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표이다.
스님과의 차담시간 직전. 테이블에 차와 과일이 세팅돼 있다.
쌍계사는 비구사찰인데, 특이하게도 템플스테이 담당스님은 비구니스님이시다.
다음날 담당스님과 국사암과 쌍계사의 넓은 부지에 있는 마을을 걸으며 명상을 했다.
아래 나무는 국사암 앞에 있는데, 한 뿌리에 4개의 나무가 자랐다. 밑둥(이라고는 해도 사람 어깨높이의 주 줄기) 을 다섯 사람이 팔로 감싸봤지만 다 안지 못할 정도로 굵다.
아래 사진은 '연지'라는 곳. 넓지 않은 연못에 연이 자란다고 한다. 그 둘레엔 포장된 좁은 산책로와 벚나무가 늘어서 있다.
경내 사천왕문 옆에 있는 템플스테이 업무를 보는 공간인 시민선방 앞에 놓인 찻주전자 조각.
7. 템플스테이 끝나갈 무렵
애초에 돌아오는 차표를 예약하지 않았다. 폰이나 웹으로는 화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차표 예매가 불가능했고, 화개터미널 도착해서는 거기서 버스를 탈지, 아니면 구례로 가서 기차를 탈지 결심이 서지 않아서 다음날이 평일인 금요일이라는 걸 믿고 차표예매를 유보했었다.
스님과 참가자들이 아침산책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중에 템플스테이 잡지에 실릴 사진에 우리의 모습도 담겠다기에 한두 장 찍히고, 스님이 바람막이 쟈켓을 장삼으로 갈아입으러 가신 사이에 내가 타려고 맘 먹은 KTX의 입석표마저 매진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급해졌다. 무궁화는 입석표가 남았지만 4시간을 서서 온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버스표를 구해야 했다.
일단 양해를 구하고 사진촬영에서 빠져 머물던 방으로 돌아와서 검색과 전화로 다행히 1장 남았다는 차표를 예약했다.
"딴사람한테 팔지 마세요." 신신당부했다.
"안 오면 안 돼요!"
전화 속에서 아저씨도 내 다짐을 받았다. 같은 입장.
바람보다 빠른 화개터미널 12:20분 차였다. 쌍계사에서 화개까지는 버스로 15분 정도 거리지만, 버스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쌍계사-화개터미널 가는 버스는 10시 대는 이미 지났고 11시 대에 40분, 45분 두 대가 있는데, 절입구까지 내려가는 시간 10분 잡으면 늦어도 30분엔 출발해야 해서 11:40분인 점심공양을 못한다. 서울까지 빈 속에 가기가 뭣하고, 또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려도 집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한참 가야 해서 결국 그때까지 굶기 십상이라 공양간에 가서 부탁했다.
"남은 밥 있으면 미리 점심공양 간단히 할 수 있을까요? 버스시간 때문에..."
주방에 있던 할머니 중 한 분이 단호히 대답했다.
"안 돼요!"
'남은 밥이 없는데'도 아니고 '곤란한데'도 아니고 '안 돼'라니!
절에서 밥 안 주겠다는 말을 어쩜 그리 당당히 할 수 있는지?
절밥은 비단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아니라도, 꼭 불자가 아니라도, 오고가는 대중들의 배고픔을 덜어주던 불교의 자비의 상징이 아니던가? 불교에서는 '보시'를 큰 공덕으로 여기지 않던가? 절은 일반불자와 대중들에게 공양을 받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세상에 보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혹시 보시는 경영과 번거로움을 계산하지 않던 옛날불교(참불교)의 회상일 뿐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자비와 보시의 실천을 빼면 불교사상과 교리는 다 위선이자 망상적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쌍계사와는 달랐던 오대산 월정사와 비교가 됐다. 월정사는 전나무숲길로 유명한 사찰이다. 예나 지금이나 불교를 좋아하지만 종교로써보다는 수신(修身)과 철학적으로 선호하는 편이라 전나무숲길에 더 관심이 컸다. 월정사 단기출가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 있지만 그것도 내 삶을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그 월정사를 처음 찾아 전나무숲길을 걷다가 배고파서 공양간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밥때가 벌써 끝나서 텅 빈 공양간엔 불이 꺼져 있었다. 하지만 밥과 반찬, 식기들이 겉에 놓여 있어서 누구라도 불을 켜고 들어와서 떠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에도 두세 커플의 방문객이 들어와 밥 먹는 걸 보았다. 밥 주기를 대번에 거절한 쌍계사 늙은 공양간보살들의 태도에 월정사의 자비가 퍼뜩 떠올랐다.
가르침과는 달랐던 절의 모습을 겪자 그곳에 더 머무르기보다 차라리 밖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더 의미있겠다 싶어서 여유가 좀 있음에도 일찍 절을 떠났다.
(쌍계사가 오래 전 내 꿈에 상서롭게 등장한 뒤로 가보지도 못한 쌍계사는 늘 내 예술적 영감의 고향 같은 존재였고, 내 문학과 예술작업에 회의나 권태가 생기면 다시금 열정을 되찾으러 찾아가야 할 곳으로 막연히 여겨져왔으나 단 한 번의 방문으로 바뀌었다. 실제 쌍계사는 경치 좋은 수많은 관광지 중 하나에 불과하고, 내 영감의 고향은 하나의 상징인 마음의 '쌍계사'로 남기기롯)
8. 돌아오는 길
쌍계사 입구로 나와서 화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장터에서 각종 산나물들을 구경하고(요리를 못해서 사지는 않았다), 시내버스 정류장인 슈퍼 앞 그늘 아래 할머니들 옆에 앉았자니 한가한 풍경이 참으로 좋았다. 전통찻집의 모습도 운치 있었지만, 슈퍼나 그 뒤에 작은 장터의 사람 사는 풍경들, 한가함이 생활과 분리되지 않은 풍경들이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했다.
(물론 바깥사람이 보는 모습일 뿐일 게다. 그 풍경 안을 사는 그들도 여느 생활인들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치열함을 떠안고 있을 테니..)
할머니들께서 알려준 버스를 타고 화개터미널에 도착해서 차표를 사고 보니 차시간까지 15분여가 남았다.
"아저씨, 이 근처에 잘하는 식당 있나요? 점심 못 먹어서요."
아침에 전화로 차표 예약해준 터미널 주인아저씨께 여쭈었다.
"시간 안 될 낀데... 음... 그라믄 내가 차를 붙잡고 있을 테니까 먹고 와요. 저 '약' 간판 지나서 오른쪽에 보면 매일식당이 있는데 제대로 된 재첩국을 먹을 수 있어요."
불교언어로 '여여(如如)함'이나 '자비심'은 쌍계사 공양간보다는 쌍계사 입구 마을의 한가한 생활풍경이나 화개터미널 주민의 마음씀에 더 합당한 말인 듯하다. 부처님은 절이 아니라 마을과 길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참고로 재첩국은 못 먹었다. 가르쳐주신 곳에 뛰어 갔으나 못 찾았고(약 간판을 더 지나서 오른쪽 골목을 찾아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거기 못 미쳐서 찾으니 없었다), 식당 찾다가 시간 보내고 밥을 급히 먹다 탈나면 길 나서는 중에는 한 끼 굶느니만 못하다 싶었다. 또 나 때문에 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안 될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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