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리암행 버스를 타기 위해 걷기
도보의 1차 목적지는 남해군청 소재지인 이동면의 버스정류장.
남해터미널에서 8시에 출발한 직행버스는 '이동 버스정류장'에 정차한 후 종점인 제1주차장에 도착한다고 인터넷에 나왔다.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도 바로 인터넷 검색결과들이었다. 충분히 대중교통으로 가능하니까 저렇게 노선 등이 소개되었겠지. 지인의 집과 얼마나 떨어진 거리인지도 모른 채 방향만 묻고는 길을 떠났다.
인도도 없는 2차선 도로로 나서기 직전에 문 앞까지 배웅나온 지인이 알려주었다.
"꼭 정류장이 아니라도 버스 보면 손 들어요. 그러면 서요."
"버스 번호가 없으면, 일반 버스에 '보리암'이라고 행선지가 써 있나요?"
"일반버스가 아니라 마이크로버스인데 뭐."
나는 다른 지역에서 위 사진 같은 도로 옆을 걸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걸음걸음이 즐거웠고, 나비가 즐거운 사람을 알아보기라도 하듯이 흔들린 내 손가락에 내려앉기도 했었다. 평소에도 가끔 흥겨운 기억으로 떠오를 정도라서 이날도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남해에선 달랐다. 보리암 방면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직행버스가 오는지 확인해야 했고, 차들이 수시로 내 옆을 지나며 태풍 말단과도 같은 바람을 일으켜서 걷는 게 금세 힘들어졌다.
'택시 부를까? 군내버스를 타야할까?'
계속 갈등이 생겼으나 시간을 확인하니 8시 13분, 곧 직행버스가 올 참이었다. 참자!
2. 보리암 직행버스 놓치고 군내버스 타기
예상대로 곧 직행버스가 왔으나 놓치고 말았다.
무심코 수백 미터 앞 삼거리에서(이동면으로 가려면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야 한다) 우회전하는 옅은 브라운색 미니버스를 보고 '앗! 마이크로버스랬지? 놓친 건가?' 하고 당황했다. 재빨리 길 건너로 뛰어가서 아직 첫 손님도 받지 않은 식당에 들어가서 방향과 정류장을 묻고, 직행버스 시간도 다시 묻고, 안 되겠다 싶어 택시기사한테 콜전화를 했다가 웃돈을 달라기에 취소하고 나니 막막해졌다.
'이제 어째야 할까?' 멈춰 서서 궁리하는 사이에 일반버스가 한 대가 옆을 획 지나치는데, 글쎄 그게 보리암행 직행버스가 아닌가! 미니버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썅 ㅠㅜ 더구나 직행버스 앞유리 우측에 붙은 목적지에는 '터미널 - 복곡'이라고 써 있었다. 복곡이 인터넷 검색마다 기술된 '제1주차장'이었다. 버스에 목적지를 그렇게 쓸 거면 인터넷 검색에도 '복곡 주차장'이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탈 버스가 맞는지 어떤지 헷갈리다가 뒤늦게 손을 급히 들었을 때는 버스가 막 내 옆을 스친 뒤였다.
그 버스가 아까 그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는 걸 확인하고서 나도 지루한 도로를 더 걸어서 삼거리에서 우회전했다. 우회전 하면 바로 이동면인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휑한 도로와는 달리 거긴 상가와 학교와 아파트 등이 있어서 도시에 사는 내게 익숙한 풍경이었고, 그 익숙함이 버스 놓치고 갈 길이 헷갈리고 갈등만 커진 내게 안도감을 주었다.
조금 더 걸으니 군내버스 정류장이 나타났고, 거기엔 남고딩 1명과 할머니 2분이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씀 좀 여쭐게요. 보리암에 가려면 몇 번 버스 타야 되나요? 금산입구에서 내려서 주차장으로 걸어올라가야 되죠?"
"번호는 없고, 금산 간다고 써 있다."
"복곡 간다고? 금산입구에 내려서 복곡 가는 길은 등산로고, 여기서 버스 타서 기사한테 복곡 가는 버스 놓쳤다고 말하면 금산 못 미쳐서 보리암 가는 갈림길에서 내려줄 기다. 그 길은 걷기 편해"
내 선택은 편한 길쪽이었다. 마음이 지쳐서 더 힘든 일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5분 뒤에 군내버스가 와서 할머니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3. 갈림길에서 복곡으로 걸어가기 (직행버스 노선)
할머니가 시킨 대로 말했더니 기사 아저씨가 금산입구로 가는 군내버스 노선과 복곡이 종점인 직행버스 노선(이건 차로)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날 내려줬다. 갈림길로 접어들었을 때 한 20-30분 걸으면 되겠지, 하고 좀 간단히 생각했다.
그 길도 인도가 없는 2차선 도로였는데, 좌우로 우거진 수풀과 중간에 군부대 하나, 수풀 뒤에 저수지와 수로가 풍경의 전부였고, 아주 가끔 보리암으로 향하거나 거기서 나오는 승용차나 1톤 트럭들이 지날 뿐이었다.
갈림길에서 복곡주차장 가는 도로. 오르막인 등산로보다 걷기는 편하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빙 둘러가는 느낌이라 무척 지루했다. 멋모르고 저 길을 걸으며 암담했던 느낌이 생생하다. 난 전에 쌍계사 십리벚꽃길(5km)도 너끈히 걸어들어갔다가 걸어나온 사람인데, 저 길은 몇 발짝 걷기도 왠지 지치고 맥이 빠벼서 걷는 내내 갈등이 몰아쳤다. 당장 되돌아가서 아까 내린 그 갈림길에 서 있다가 군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버릴까? 그때마다 그래도 멀리서 보리암 하나 때문에 남해까지 왔는데 가보긴 해야지, 하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만난 표지판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주차장 1.2km'
지치도록 걸었는데 아직 그만큼이나 남았다는 걸 알게 되자 그만 돌아가자는 갈등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러기엔 이미 너무 많이 걸어왔다. 되돌아가는 길은 걸어온 것보다 더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할 수 없다. 더 걸을 수밖에...
'1주차장까지만 가고 거기서 택시 불러 타고 터미널로 가자.'
믿을 구석을 하나 마음에 품고 힘을 냈다.
그 표지판을 시작으로 '주차장 800m', '주차장 600m' 표지판들이 막막함을 덜어주었지만, 도로 옆 수풀 뒤에 자리한 저수지와 도로에 접한 수풀로 뒤덮인 수로의 일부를 본 순간 오싹했다. 티비 뉴스에서 사건현장으로 자주 보이던 시설이었다. 하도 불길해서 사진 찍을 생각도 없이 부리나케 걸었다. (여행 중에 이런 불길한 연상이 떠올랐다는 것만 봐도 그날 내 컨디션이 어땠는지 알 만하다.)
막판에 기운을 돋워주었던 것도 있었다. 도로 옆 약수터와 사람이 떠나버린 폐건물의 을씨년스러움을 지나서 드디어 나타난 제1주차장이 그것이었다. 거기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에이, 씨, 젠장." 평소 안 하던 욕 한 마디가 안도의 한숨에 섞여 나왔다.
4. 보리암으로 가기
복곡 주차장 즉, 제1주차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주차 중인 택시 한 대였다.
누가 대절해서 타고 온 줄 알았더니, 불특정한 손님을 기다리던 차였다. 나같이 멋모르고 걸어온 여행객이 종종 있나?
1주차장에서 2주차장(보리암 입구)까지 셔틀버스가 간다고 했으니 찾아보자. 오! 저기에 미니버스(지인이 말한 보리암 가는 마이크로버스란 바로 1주차장과 2주차장 사이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말한 것이었다. 타인의 조언은 가끔 일을 더 헷갈리게 한다) 나를 기다리고 있구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셔틀버스는 운행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고 승객이 차야지만 운행한다고 한다.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라서 승객이 찰 리가 없잖아.ㅠㅜ
할 수 없이 손님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 제2주차장으로 가면서 나올 때 택시비까지 흥정을 마쳤다. 미터기대로 가겠다면서도 1주차장에서 2주차장까지 "메타로 5,500원 나오니까 6,000원 달라"고 했고, 나올 때는 2주차장에서 1주차장을 거쳐 남해터미널까지 18,000원이라길래 깎아서 17,000원 주기로 했다. 내심 아까 버스 놓친 길에서 콜택시기사 전화했을 때 1주차장까지 14,500원 달라고 했던 택시비를 기준으로 삼았다.
"보리암에서 공양도 주죠? 아침을 아직 못 먹어서.."
"11시나 돼야 먹을 수 있는데예."
그때 시간은 9시 30분쯤이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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