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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시간/산책이든 여행이든

[김해] 차 없이 김해천문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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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해로 가기로 정한 이유


20일 저녁엔가, 정봉주의 전국구를 듣다가 23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님 서거 7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갈까? ......가야겠다!'

노무현재단 홈피로 가서 봉하마을 가는 방법과 열차시간이 안내돼 있었는데, 당일로 갔다 오긴 어려울 것 같기에 하루 묵고 오기로 했고, 기왕 그럴 거면 김해관광을 하기로 했다. 둘러볼 곳들과 봉하마을로 가는 차편과 거리 등을 두루 따져가며 숙소를 정해야 했고, 왕복열차의 좌석이 있는지도 예약 직전까지 확인해야 했고.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그 모든 것을 몰아서 궁리하고 검색하느라고 21일도 해가 저물 시간이 되어갔고, 날짜만 23-24일에서 22-23일로 바꿔서 정한(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않기 위해서는 평일 9시 10분 KTX보다 일요일 9시 10분 KTX를 타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뒤에 일단 열차편과 호텔을 예약했다. 다음은 돌아볼 곳 정하기. 우선 김해에 천문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가상별자리보기' 프로그램에 예약했다. 

       (기차역은 늘 살짝 설레게 한다)


그랬더니 김해에서의 일정은 순전히 김해천문대 방문시간에 따라서 정해졌다. 시내에 있는 수로왕릉이라든지, 박물관 같은 곳만 돌았으면 힘이 덜 들고 비교적 계획적인 일정이 되었겠지만 천문대 예약을 14:30분 프로그램으로 했더니만 대충 세워두었던 시간과 경로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원래는 진영역에 내려서 시내버스 타고 연지공원으로 가서 잘 조성된 연못공원을 보고, 점심도 먹은 후에 연지공원역에서 천문대까지 가장 가까운 택시경로인 경전철역까지(주민들에게 물어서) 가서 택시를 탄 후 김해천문대로 간다. 천문대에선 숙소 주변인 수로왕릉까지 택시를 타고 나와서 둘러보고 박물관에도 간다. 그 뒤에 시간과 체력이 되면 닥쳐서 정해보자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런데 11시 50분에 진영역에 도착하고 보니,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한 이십 분 정도 기다려야 했고, 연지공원 둘러보면 '가상별자리 보기' 프로그램에 늦을 것만 같아서 일단 정해진 숙제를 먼저 해치우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서 김해천문대로 먼저 가기로 했다.

김해 외동터미널행 14번 시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주민에게 김해터미널(또는 경전철 '봉홍'역)이 택시로 천문대까지 가장 가까운 지점이라는 말을 듣고 14번 버스를 종점에서 내려 거기서 택시를 탔다.


<<진영역에서 시내버스 타기 팁>>

진영역에서 중요한 시내버스는 단연 10번과 14번 버스이다. 10번은 '진영역 <->봉하마을' 사이를 운행하고, 14번은 '외동터미널<-(진영역)->다른 종점' 사이를 운행한다. 때문에 진영역에 내렸다면 목적지에 따라서 10번이나 14번 중 하나를 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진영역사 앞에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두 개의 버스정류장이 나란히 붙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봉하마을행'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쪽 종점인 '외동(김해터미널)행'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다. 그러나 버스들은 구분 없이 정차해서 무척 헷갈린다. 특히 14번은 같은 정류장에서 양쪽 종점으로 가는 버스가 다 선다. 그러므로 14번 버스를 탈 때는 반드시 운전기사님께 목적지를 확인하고 타는 게 상책이다. 나도 14번 버스를 두 대나 보내고 세 번째에야 탈 수 있었다.

교통카드는 다 되겠지만, 내 경우엔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로 쓰는데, 그건 안 돼서 현금으로 시내버스비를 냈다. 1300원. 참고로 경전철은 내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 1200원.


2. 김해천문대 


나는 천문대를 좋아한다. 예전 어느 날 밤에 경기도 양평에 있는 중미산천문대에서 천체관측용 망원경으로 목성과 토성, 화성도 봤고, 천문대 옥상에서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북두칠성과 북극성도 찾아본 적 있었다. 그 근처 살던 친구가 날 데려다줬었는데 혼자 별 보고 나와서 다시 데리러온 친구와 간만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사는 얘기를 했다. 별과 삶이라니! 


전국의 천문대를 다 돌아보고 싶지만, 천문대란 대개 한적하고 높은 곳에 위치하게 마련이어서 교통편이 불편한 데다가 가상이 아니라 직접 별을 관측하기 위해선 밤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내 차가 없이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별 보자고 가난한 내가 차를 살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천문대를 다 방문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다.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살다가 김해에 천문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안 가볼 수는 없지. 가상이라도 별자리를 보고 싶었다. 진영역에서 김해터미널 앞까지는 버스로 40-50분 걸렸다(안 막힐 땐 35분). 일요일이라서 시내 도로가 일부 막혔다. 김해터미널에서는 택시를 탔다. 사실 나는 택시를 가급적 안 탄다. 길눈 어두운 나한테 택시기사들은 꼭 길 모르는 척하며 "어느 길로 가야 돼죠?", 또는 경로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어느 길로 갈까요?" 하고 나를 간을 본 후 뺑뺑 돌아서 간다. 아는 지역에서도 그러는데 낯선 지역에서는 오죽할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돈 천 원 더 내서가 아니라 내가 꼭 바보 취급당한 것 같아서, 바보 취급당해 마땅한 것 같아서 열받다 못해 자괴감까지 드는 것이다. 차라리 안 타고 말지. 

그런데 천문대 가는 길이 아닌가!

어김없이 이번에도 택시기사가 "인제대 쪽으로 가는 길하고, 어디어디로(못 알아들었음) 가는 길이 있는데 어디로 갈까예?" 묻기에, 보통은 인재대 후문에서 택시를 탄다고들 하는데, 김해터미널에서 타는 게 훨씬 가깝다는 정보를 천문대 홈피에서 본 뒤라서 "두 번째 길이 더 가깝잖아요?" 하고 마치 길을 아는 듯이 대답했지만, 택시비는 7500원이 나왔는데 그게 그리 적게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잘 모르겠고, 거기서 빈 차로 나가야 되는 사정을 생각해서 잔돈은 몇 백 원은 안 받았다.


천문대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아베크족들이 드라이브를 즐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차들뿐 아니라 산책하기도 멋진 길이라서 걷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주차장까지만 차가 들어가고, 주차장부터는 잘 포장된 오르막길을 15-2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얼마 요런 표식이 있다. 천문대를 나와서 내려오는 길에 이 표식 앞에서 사진 찍다가 흙에 미끄러져서(트래킹화를 신었는데도 미끄러웠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오른속을 세게 짚어서 아직도 손목이 아프다. 병원에 안 가봐도 될지...ㅠ


서둘러 온 덕분에 30여분 일찍 도착해서 2시 프로그램에 낄 수 있었다. 아래사진은 가상별자리 보는 기계. 수억 원짜리라고 한다. 불을 끄고 천막같이 생긴 둥근천장에 불빛으로 별자리를 재현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다음엔 진짜 밤하늘을 보게 되기를...


관측소 옥상에서 본 김해시내. 이날 날씨가 좋아서 부산까지 보였을지도 모른다. 


천문대의 상징 둥근지붕(?). 우리가 가상별자리를 보고 옥상에 올라서 김해시내를 본 또 하나의 둥근지붕은 이 옆에 있다.


아래의 둥근지붕은 연구원들이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는 곳이라고 한다. 둥근지붕이 양옆으로 열린다.


아래 사진은 주차장에서 내려서 천문대까지 걸었던 오르막길. 내려갈 땐 내리막길이 되었다.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아까 말했듯이 내려가는 길에 사진 찍다가 엉덩방아 찧어서 엉덩이와 손목이 많이 아파서 어서 택시를 부르고 싶었지만 카카오택시로 호출해도 응답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웬 셔틀버스에 사람들이 타길래 물었더니 그건 바로 '가야테마파크' 셔틀버스. 그제야 보니까 주차장 앞에 가야테마파크가 있었고, 테마파크 셔틀버스는 1시간에 한 번씩 시내로 운행하는 것. 

그런데 테마파크 입장권이 없으면 탈 수가 없다며 나를 태워주지 않고 출발.

가야테마파크의 입장권만 사고, 1시간을 기다려서 셔틀버스를 타고 길 찾기 좋은 경전철역에 바로 내려도 택시비 7500원보다 싼 5000원이니까 이것도 한 방법이다.  난 테마파크엔 관심 없으니까 카카오택시를 계속 호출할지 잠시 갈등하는데, 주차장 관리하시는 분이 내 신발을 보더니 "1시간 기다렸다 그걸 타느니 신발도 편한 걸 신었겠다, 지름길로 슬슬 걸어가면 1시간 안 걸려서 롯데캐슬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수로왕릉이나 박물관 다 나오는데 뭐..." 하신다.

아닌 게 아니라 원체 걷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올라올 때 보니 길도 예뻐서 걷기 좋겠고(좀 돌아서 그렇지 오르막은 가파르지 않음), 흠... 그리하여 걷기 출발. 


그런데 택시로 올라온 길에서 갈라진 지름길로 접어들어 몇 미터 못 가서는 잠시 곤혹스러워졌다. 그 길은 지름길인 만큼 찻길보다는 내리막경사가 좀 심하고 또 너무 호젓하고 인적이 없었다(지형도 트래킹이나 등반하는 분들이 좋아할 길). 아래 사진은 지름길로 막 접어들어서인데, 저 나무모퉁이를 돌면 바로 산길이 시작된다. 산행은 길을 알 때는 평화롭지만, 길을 모를 때는 불안해지는 법. 나무모퉁이를 돌자마자 무슨 컨테이너 사무실 같은 게 있고, 맞은편에 주차된 차에서 남자가 내리는 걸 봤는데, 괜시리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특히 모르는 등반길에서 갈림길이 나오면 제일 엿같다. 사실 내려와보면 어느 길로 가도 다 도착해야 할 곳에 닿게 마련이지만 노련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순리를 알아도 막상 닥치면 헷갈리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구글맵스에 매달렸다. 암튼 그 바람에 한꺼번에 왕창 지쳐버렸다. 다행히 2/3 지점쯤 도착했을 때 올라오는 어떤 여자분께 길을 물으며 잠시 대화하면서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여자들은 대개 나 혼자 다니는 걸 알면 부러워한다. 누구나 혼자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나도 혼자 하는 해외여행자에 대한 로망이 있다. 사실 로망이라기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내 삶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지만...

이 길을 다 내려갔을 때는 오후 3시 40분쯤. 오늘의 다른 여정은 아직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