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시간/산책이든 여행이든

[김해] 노 대통령 7주기 추도식 참배

구름벗 2016. 5. 25. 15:16
반응형

1. 그리운 대통령 


앞에 소개한 방법대로 10:30분 출발하는 시내버스 10번을 타고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조금 지체됐으니 아마 11시 10분쯤 도착했을 것이다. 사실 10-20분 전에 300번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난 사람들까지 쳐도 진영역에서 탄 승객수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지만, 진영터미널에서 버스는 만원이 됐다. 도로도 막히지 않았지만, 역시 봉하마을 입구와 가까워지자 추도식장으로 향하는 전세버스들과 승용차들로 도로가 막혀서 다소 지체됐고, 참지 못하고 마을입구에서 미리 내려서 걸어가는 사람도 많았다.


종점인 봉하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마을 쪽으로 가자 길가에 꽂힌 노란색 바람개비가 바람과 더불어 놀고 있었다.

그 바람개비들의 안내를 받아 가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대통령생가의 담벼락 앞에 전시된 노 대통령의 생전 사진을 보는 순간 그만 울컥 복받치는 게 있었다. 눈물 같은 거, 그리움 같은 거...


좀 더 가면 보이는 추모관에도 많은 사람들이 노 대통령의 생전 자취와 업적을 회상했다.


대통령님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포근히 안기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찍을 때마다 대통령님께 바짝 붙어 찍어서 내 몸으로 가리고 말았다.ㅋㅋ



2. 봉하마을 추도식날 풍경 


대통령님 묘역으로 가서 일찌감치 참배를 했다. 이때만 해도 아직 참배객이 밀려들기 전이다.


부엉이바위와 사자바위가 보인다.


두 바위로 가는 등반로가 있다. 시간이 어중간하고 날이 너무 무더워서 당장 등반하긴 어려웠지만 다음에 한번 올라가고 싶다. 산이 그리 높지 않아서 나처럼 등산보다는 평지걷기파도 즐길 만해보였다. 추도식 직전에 우연히 내 옆에 서게 되어 수다 몇 마디 나눈 여성분이 슬쩍 정보를 준다. 

"이런 날씨엔 푹푹 쪄서 못 오르고, 매년 1월 1일에 여사님과 대통령님께 새해인사 올리는 행사할 때 와서 등반하면 딱 좋아요. 등반 후에 떡국을 주시는데 그 뜨끈한 국물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진영역에 식당이 없어서 아침을 굶은 탓에 일찍 점심을 먹어야 했다. 노무현재단에서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일가에서인지 봉하마을 방앗간에서 참배객들에게 점심을 제공해주었는데, 그날 시민들이 3,000명 정도 왔다고 하니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드셨을 듯하다. 미안해서 후원금을 내고 싶었는데, 현찰이 15,000원밖에 없어서 못 냈다. 기회 봐서 다만 얼마라도 계좌이체로 보낼까 한다. 


부엉이바위 아래에 추도식장이 마련되었고, 많은 의자가 놓였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민들과 자원봉사 진행요원들과 경찰들, 모르긴 몰라도 사복경찰들, 그리고 정치인이 식장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추도식은 오후 2시에 시작되는데, 내가 타고 갈 열차는 3:47분 차였다. 문제는 봉하마을에서 나가는 버스가 2:05분과 2: 30분 차밖에 없어서 추도식에 참여할 수가 없다는 점. 할 수 없이 유족인 여사님과 그 아들, 그리고 내가 대통령후보로 지지하는 문재인 전 대표라도 봤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머물렀다. 


그런데 위에 사진 몇 장 스마트폰으로 찍는데, 저쪽에서 웬 사람들이 마치 바닷 속에 물고기떼처럼 덩어리를 지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그 인파덩어리의 외벽을 경찰들과 폴리스라인이 견고히 둘러싼 채 움직이기에, 저게 대체 누군가 하며 급히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촬영했다. 옛 프랑스의 어떤 왕의 두려운 행차 같기도 한 그 무리 속 인물은 내 눈엔 끝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옆에 사람들의 말소리로 그가 안철수 의원임을 알았다. 시민이 모인 자리에서조차 경찰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오지 못하는 인물이 과연 대통령후보의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다. 안철수 씨의 뒤를 이어서 하나 둘 추도식장으로 들어가던 다른 의원들과도 많이 비교된다. 저런 볼썽사나운 등장에 야유가 짤막하게 들렸지만 이내 그쳤다. 



그나저나 내 아이폰으로 찍은 동영상이 어쩐 일인지 맥북에 자동저장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유튜브에 내 채널을 만들어서 기록보관용으로 저장했다. 김해로 출발하기 직전에 iOS 업뎃되더니 뭔가 바뀌었나? 더 불편하게 바뀔 리가 없는데...?


이 날 봉하마을에서는 각종 단체가 국회청원을 위해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나도 서명하고 그 중에서 세월호 리본 하나 집어 왔다. 재주 있다면 2개 들고 와서 귀고리로 만들면 이쁘겠다 싶다. 


봉하마을에서 진영역 플랫폼까지는 어떤 노부부와 함께 와서 못 느꼈는데, 혼자가 된 서울행 열차 안에서는 두서없는 생각들이 오갔다. 

'인파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적막해진 봉하마을에 남겨질 그 아내는 참 쓸쓸하고 마음 아프겠다.'

'그 아들, 딸은 또 얼마나 억울할까.'

사람이라면 그 입장에서 그러지 않겠나.